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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가]살리기

매거진 휴가: 이제부터 괜찮아질 시간이야_ 공사현장 스케치 2


둘쨋날 : 21일_ 수


내가 좋아하는 책이 있다. 기독교 서적인데, 로버트 멍어의 '내 마음의 그리스도의 집'이라는 책이다. 뒷부분에 가면 신이 주인공 마음에 있는 벽장을 치우는 장면이 나온다. 온갖 쓰레기로 썩은내가 나도록 내버려둔 벽장. 그곳엔 주인공이 사랑하고 포기하지 못하는 더러운 것들이 가득가득 차있다. 그곳을, 신이 직접 치우는 장면이 나온다. 

오늘 폐가에 있는 방 곳곳의 쓰레기들을 먼저 꺼내는 작업을 했다. 광주에서 온 총각들이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쓰며 쓰레기와 사투를 벌였다. 그리고 물건 곳곳에 알을 깐 바퀴벌레와 곱등이, 귀뚜라미, 여치와도 전쟁을 치뤘다. 그들을 피해가며 쓰레기를 하나씩 하나씩 꺼내니 폐가는 그야말로 본인의 정결한 태를 들어냈다.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렸을 이 집. 한 때는 누군가의 사랑받았던, 누군가가 안식을 누렸던 곳이 회복이 되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내게 회복이 일어나는 듯했다. 그 시작이 바로 쓰레기를 치우는 아주 기본적인 것임에도 말이다. 

쓰레기로 가득차 있던 두개의 방은 깨끗하게 비워졌다. 이제, 괜찮아질 시간만 남았다. 










아직 빛이 마을에 다 스며들지 않은 아침. 모두가 땀을 흘리기 시작한다. 

다른 '빈집'으로 이동했다. 강릉과 춘천에서 내려온 청년들. 아가씨 두명과 총각 한명은 열심히 벽지를 땟다. 새로 도배를 할 예정이라 했다. 벽지를 뜯어내니 무엇이 나왔는지 아는가. 바로 초가에서 사용하는 흙벽이 나타났다.(약간의 보수가 되있던 이 집은 원래 초가를 살짝만 개조한 집이라 했다) 그리고 그를 잇는 튼튼한 나무기둥들. 그 속에서 살아가는 작은 생물들까지 볼 수 있었다. 아무도 살지 않는 이 집, 남 몰래 숨을 쉬고 있는 듯해 기특했다. 우리가 오기까지, 잠시 버려졌던 그 시간들 속에서 얼마나 외롭고 고독했을까. 이 작은 생명들을 품으며 말이다. 이제, 생기만 불어넣으면 된다. 





비어있는지 일년이 된 집이다. 누군가에게 따스한 햇살을 주었을 너. 고생했어. 잠시만 안녕. 또 만날 수 있어. 약속하지 않아도.



다시 폐가1호.

와우. 방이 다 비워졌다. 온갖 쓰레기를 비우며 이들은 엄청난 먼지를 먹는다. 

먼지는 쉽사리 나가지 않는다. 집을 향한 미련이 방문하는 모든 사람들의 머리, 얼굴, 입술, 편도선, 폐 곳곳에 내려 앉는다. 먼지낀 시간들, 차마 가져가지 못한 미련들도 다 비운다. 



잘 닦아보면 골동품 같은 유리 그릇들이 많이 나왔다. 예쁘게, 맛있게 살고 싶어한 제주 아가씨도 이 집을 거쳐갔구나.





마당에 심을 꽃씨. 싹이 나오는지 안나오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는 이 아이들 모두가 죽었다고 했다. 하지만 모르는 일. 우린 꾸준히 물을 주고 있다. 가을이 이 무더위를 넘어 오는 것을 우리는 잘 모르듯, 이 아이들이 언젠가 싹트고 나올 것을 우린 모른다. 그치만 가을은 반드시 오듯. 이 아이들도 반드시 자랄 것이다. 그지? 자랄거지..? 자라죠.... 



옆 창고를 치운다. 

흙돌 집인데. 벽이 무너져 흙과 벽이 무너졌다. 창고 안으로 떨어진 돌도, 흙도 모두 치워야한다. 집을 만든 녀석들을 치우려니, 먼저 녀석들의 흙내음을 깊이 들여마시게 된다. 한숨을 내쉬면 녀석들이 고스란히 내 안으로 들어온다. 그렇게 우리가 있는 공간과 교감하며 집을 다듬어 간다. 



이제 점점 빛이 마을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이미 모두는 땀을 흠뻑 흘렸다. 이미 모두는 흙을 깊게 마셨다. 빛이 마을에 스며들듯, 우리도 집의 일부분이 되어간다.










다시 2호집. 벽지를 때어내고 쉼을 누리고 있다. 대학시절, 함께 지지고 볶고한 선후배 사이다. 부럽다. 

빈집이 부럽다. 아름다운 추억을 가진 사람들이 정성스레 만져주고 있다. 

"어머, 어디서 오셨어요?"

벽지 뜯기에 마이너스 손... 손만대면 주르르르르르륵, 벽지들이 한방에 떨어진다. '업체에서 왔어요~ 홍홍홍' 하며 웃으며 벽지를 모두 뜯는다. 

괜히 속이 시원하다.










벽이 살아있다.

집이 살아있다.

살아있는 것을 우린 얼마나 죽이는가. 


우린 하루일당 끝! 1호집 안끝났나요? 호호호.

고생한 강원,춘천IVF학사들. 고마워요.



마무리하려..다시 1호집. 

마지막으로 강관파이프에 프라이머를 칠하는 것!


하루의 노동은 4시간으로 족해요.

아침 7시. 해가 가득한 햇살을 들고 올라오는 그 때부터 11시까지. 쓰레기를 정리하고, 파이프에 페인트를 칠하고, 벽지를 뜯고.. 4시간동안 땀을 흘렸다. 그리고 고생한 이들과 흑돼지 두루치기를 먹으러갔다. 일하는 속도는 3G. 먹는 속도는 LTE A다. 나도 왔다갔다 땡볕에 1호집 2호집 사진을 찍으러 다닌 탓에 이성을 잃고 한공기를 뚝딱 먹었다. 아쉽게도 먹은 사진이 없다..

순식간에 먹어치우고, 청춘들은 아름다운 제주와 연애하러 떠났다. 그들이 연애하는 동안 난 꿈나라에서 에어컨을 틀고 자는 꿈을 꿨다. 달다 달아. 하루가 달다. 

밤에 모여 협재로 도망갔다. 여행하며 다른 곳에 들리는 느낌이 아닌, 일탈의 느낌이었다. 노동현장을 도망쳐나온 느낌. 해가 지는 협재해변을 거닐며 발을 젹셨다. 

수다를 떨었다. 계속계속. 폐가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가고 자신들의 이야기가 오고갔다. 이야기는 무르익고, 밤도 무르익었다.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special휴가로 페이지를 떠나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