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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가]살리기

매거진 휴가: 지난 시간이 이어지는 지금의 시간_ 마을 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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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일이 지나고 다시만난 한림3. 냄새는 조금 가라앉았지만, 제주의 무더위와 열기가 마을에 가득했다. 제주의 작은 분지와 같은 이곳의 땅이 열을내고 있었다바람의 방향에 따라 마을에서 나는 냄새도 달라진다. 저 윗마을 금악에서 내려오는 축산 냄새가 흘러내려올 때면 인상을 찌푸리게 되지만, 그 냄새가 한림이 아닌 협제로 넘어가는 날이면 길가에 새워진 참깨들의 잎에서 나는 고소한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여름이라 그런지, 해도 높게 높게 뜬다. 최악의 가뭄으로 신음하고 있는 제주 서부에 내려진 폭염주의보를 매일매일 견디는 이곳의 땅은 많이 메말랐다. 











우면 어떠하리. 마을 주민들은 자기 위치를 여전히 지킨다. 밭을 지키는 분들은 밭을, 살림을 맡으신 분들은 살림을, 집을 지키시는 분들은 집을.. 각자의 자리에서 충실하신 이분들로 인하여 오늘도 한림3리는 자신의 모습을 유지한다. 땀을 비오듯 흘리는 날, 부녀회장님은 뜨거운 물에 쑥을 우려내고, 치자 염료를 끓여 섞은다음, 감물로 초벌을 한 보자기에 다시 치자염색을 하신다. 커텐을 만드실 것이라고 한다. 폐가 1호집 옆 집에 사시는 삼춘도 집안을 천천히 돌아다니시며 집안일을 하신다. 저녁에 먹을 물외(제주오이)를 씻으시고, 오늘 땀으로 흠뻑 젹신 옷들도 벗어 빨래하고 말리신다. 








더운 날, 비처럼 내리는 햇살로부터 피하려고 무장을 한 삼춘이 깨를 치신다. 수작업으로만 해야하는 이 정교한 일을 땀을 뻘뻘 흘리며 하신다. 하나 있는 선풍기는 삼춘을 위한 것이 아니다. 선풍기의 바람이 깨의 껍질을 다 날려주면 또 다른 불순물들을 걸러내는 작업을 계속해서 하신다. 사진을 찍으려하니 부끄러워 하신다. 긴장하신 표정으로 사진을 깨알같이 찍고, 모델비로 시원한 음료를 가져다 드렸다. 

마을을 돌며 사진을 찍었다. 이집에서부터 저 집까지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사람의 향기가 전해지는 것 같아 고마웠다. 마주치게 되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다. 그럼 어르신들은 웃음으로 다시 인사해주신다. 마을이라는 곳에서 간만에 느껴보는 따뜻함이었다. 















지금 한림3리는 촉촉히 비 온 뒤, 모두가 바쁘다. 양배추, 브로콜리, 양파 등의 묘종을 심기 딱 좋을 때이기 때문이다. 마을 곳곳에 묘종들이 햇빛을 쬐고 있었다. 



여기가 마을 입구. 여기가 명당이다. 자세히 보면 한라산이 보인다. 한림3리의 밭과 마을 집을 넘어 서쪽에 솟은 오름과 제주의 한라산을 볼 수 있는 이 명당. 마을 안으로 들어가려면 이 길을 꼭 지나가야한다. 

풀, 돌, 흙. 


개발위원장님께서 말씀하셨다. 예전에는 경운기 소리만 들어도, 누구네가 밭일하러 가는지 다 알았다고. 그런데 지금은 그러지 못한다고. 서로 워낙 바쁘기도 해서 그렇지만, 그렇게 살 닿으며 사는 이웃이 없는게 슬프다고 하셨다. 농촌에 이 작은 마을에서 조차 말이다. 사람냄새가 그립다 하셨다. 사람의 입냄새 조차 그립다 하셨다. 사람에게서 나는 냄새가 그립다 하셨다. 향수 뿌리고 꽃 단장해서 만나는 그런 관계에서 벗어나고 싶다 하셨다. 땀 냄새 함께 맡을 사람을 만나고 싶다 하셨다. 이웃, 식구, 가족같은, 그런 마을 공동체가 그립다 하셨다. 그래서일까, 경운기, 트럭만 보면 개발위원장님의 그 말씀이 떠오른다. 함께 사는 삶에 대한 깊은 그리움. 


사진을 찍다가 만난 동네 어르신. 

'사진 기자세요?'라고 물으셨다. 나도 모르게 딱히 설명할 길이 없어, '네'라고 대답했다. '고생이 많으시네요. 날이 더우니 냉수한잔 하고 가셔요'.라고 하셨다. 땀이 비오듯 흘러 어르신을 따라 집으로 갔다. 어르신네 집은 너무 좋았다. 남향에 집안을 모두 나무로 인테리어를 하신 주택이라 바람도 너무 잘 들어오고 안도 너무나 시원했다. 

집으로 들어가니 어르신께서는 할머니에게 나의 냉수주시는 일을 떠맡기셨다. 그리고 왠걸. 허리가 굽으신 할머니가 쟁반에 담아오신 것은 냉수가 아닌 아주 따뜻한 커피. 괜찮다고 해도 할머니는 웃으며 내 앞에 커피를 주셨다. 조심조심 한 걸음 한걸음 걸어오시며 내 앞에 놓여진 커피. 감사하기도 하고 우리 할머니 생각이 나 한장 찍었다. "사진기자니까 커피도 다 찍는구먼! 허허허." 어르신의 칭찬에 또 울컥. 이 커피. 홀짝홀짝 너무 달게 마셨다. 


신나게 어르신과 마을의 깨와 마늘 농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떠들다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할머니께서 얼마나 살림을 깨끗하게 하시는지, 마루에, 주방에 먼지 하나도 없었는데 마당에 이렇게 예쁘게 고추까지 말려놓으셨다. 빨갛게 익은게, 수줍은 할머니 닮았더라. 



한림3리. 반갑다. 30분이면 다 돌아볼 수 있는 제주에서 작은 마을. 이 곳의 폐가를 고침으로 인해 생기넘칠 마을을 기대하며. 앞으로 몇 바퀴를 더 돌게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