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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싹]대장 잡수다

[제주내땅] 초무자 무진 - 애초에 없는자 영원히 있으리니


토지의 새로운 쓰임을 꿈꾸며,,,

과거의 현인들의 생각들을 곱씹으며, 업적들을 학습하고 있습니다. 



애초에 없는자 영원히 있으리니...

초무자 무진 初無者 無盡


무슨 뜻으로 읽혀 지시는 지요? 





육룡이 나르샤 다들 보시는 지요? 







애초에 없는자 영원히 있으리니...

초무자 무진 初無者 無盡


저에게는 대단히 아픈 이야기로 들리더라고요. 

육룡이 나르샤 에서는 이름이 없는자 영원히 살것이니? 요런 맥락으로 쓰였던 것 같은데. 

저에게는 가진 것이 없는자, 풍요를 영원히 누릴 것이니? ㅠ,ㅜ




육룡이 나르사의 시대상황이 조선건국 전후 라는 사실에서 저는 주목해서 보는 부분은. 

특히. 토지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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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농업을 중심으로 한 사회였기 때문에 논밭에서 일한 만큼, 땀 흘린 만큼 대가를 받는 것만이 정당한 이익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상업은 생산자가 생산한 상품을 유통의 과정을 거쳐서 소비자에게 파는 과정에 이윤을 붙이고 파는 구조여서 이들 상인이 얻는 이익은 모두 정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농부가 땀 흘린 만큼의 대가보다 훨씬 많은 이윤을 챙긴다고 본 것이다. 정당한 이윤이 아니라 부당하게 이익을 취한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뿐만 아니라 상공업과 유통이 발달하지 못해서 상품의 지역 편중성이 심해서 어느 곳에서는 썩어 넘쳐나는 물건임에도 어느 곳에서는 너무나 귀해서 구하기 힘든 상품이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의 권력자들은 권력과 돈을 움직여 유통되지 않은 상품을 가져다 생산지와 먼 곳에 팔거나, 많이 나오는 계절에 상품을 쌓아두었다가 값이 비쌀 때 내다 파는 방식으로 부정한 이익만을 꾀하는 현상에 대해서도 상인이나 부자가 이익을 챙기는 것은 사기이고 도둑심보라는 말을 할 정도로 인식이 좋지 않았다. 



단원 김홍도의 논갈이,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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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여겨 보고 싶은 토지개혁의 내용중 정약용선생님의 정전제에 대한 운영방식 입니다. 


지주제에 대한 태도와 함께 정약용이 이전 실학자들과 구분되는 또 하나는 노동력과 경작지를 짝 지우는 방식에 대한 그의 생각이다. 유형원은 정전제의 핵심이 백성들에게 항산(恒産), 즉 자활 가능한 일정한 넓이의 경작지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력을 기준으로 경작지를 나누어야 했다. 하지만 정약용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오히려 경작지를 기준으로 노동력을 배치하는 것이 정전제라고 주장했다. 토지 소출을 가장 잘 할 수 있도록 노동력이 

이러한 노동력과 경작지의 결합방식에 대한 인식 차이는 유형원과 정약용의 개인적인 생각보다는 그들이 살았던 시대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유형원이 살았던 17세기 중반에는 백성들이 경작지 말고는 다른 경제적 기반을 확보하기가 어려웠다. 물론 정약용이 살았던 18세기 말과 19세기 초반에도 농업은 여전히 가장 중요한 산업이었다. 하지만 농업이 유일한 산업이라고 하기는 어려웠다. 수공업과 상업이 일정하게 발전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정약용은 경작지와 짝 지워지지 않는 사람들도 다른 직업으로 농부와 더불어 그들의 생산물과 기능을 교환하여 살아간다고 말했다. 살기 위해서는 밥 이외에도 수공업자가 만들고 상인이 운반하는 다양한 물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약용은 국가가 토지소유권을 직접 나눠주는 방식으로 백성들의 살림을 책임질 수는 없다고 보았다. 대신에 정약용은 다른 두 가지 방식이 민생을 담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첫째는 조세 운영을 원칙대로 하는 것이고, 둘째는 농업을 포함한 다른 다양한 직업을 권장하는 것이다. 국가의 일은 백성들 모두가 경작지를 갖도록 하는 것이 아니고 적절한 일자리를 갖도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결코 민생을 포기한 것이 아니었다.





토지개혁은 우리 사회 전반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지주계급은 대대로 토지를 세습했고, 소작인 계급은 대를 물려 소작인으로 존재함으로써 부익부(富益富) 빈익빈(貧益貧) 현상을 되풀이해 왔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지주 계급이 소멸됨으로써 

뿌리 깊게 이어져 오던 지주-소작인, 즉 부자와 빈자(貧者)간의 갈등을 일거에 불식시킨 것이다.











학습을 하다보니, 토지의 제목을 가진 대표문학작품인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를 통하여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들이 다시 떠오르네요. 

토지의 책을 읽은지가 15년은 된듯하여 내용에 대한 기억이 가믈가믈합니다. 

다시금 읽어봐야 하겠다는 마음이 생겼답니다. 






사랑은 가장 순수하고 밀도 짙은 연민이에요. 

연민. 

불쌍한 것에 대한 연민 

허덕이고 못 먹는 것에 대한 설명 없는 아픔. 

그것에 대해서 

아파하는 마음이

가장 숭고한 

사랑입니다. 

사랑이 우리에게 있다면, 

길러주는 사랑을 하세요. 

'생명의 아픔'

박경리


토지/박경리 소설의 리뷰. 

책을 읽어가면서 무릎을 치며 감탄했던 것은 '토지'라는 제목이 주는 어마어마한 함축성과  더불어 모든 주제를 끌어안은 결정체라는 것이었다. 저 한반도 끝 남단의 평사리라는 동네부터 북쪽 끝 간도에서 펼쳐지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아, 이것이 지금의 한국인이 되었고 지금의 한국의 모습을 만들어낸 것이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태어나면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다는 요즘 말과는 반대로 태어남과 동시에 온갖 배고픔과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는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 인생에서의 기쁨의 순간은 그야말로 찰라이며 슬픔과 고통은 삶 그 자체였다. 그러기에 그들은 기쁨의 순간 더 기뻐할 수 있었고 슬픔의 시간에도 견뎌내었던 것이다. 그것이 운명이었고 그들의 한이었지만, 그 한이 곧 그들의 삶이었다.   그러나 그 한은 삶을 파괴하지 않았다. 오히려 삶을 살아가게 만드는 이 땅의 사람들의 원동력이었다. 따뜻한 밥 한끼의 한, 내 고향, 내 땅, 내 나라를 되찾고자 하는 그 한으로 그렇게 살아낸 것이었리라.   책은 토지라는 제목처럼 그 삶들의 희노애락이 자연과 더불어 일어나는 듯했다. 스쳐 지나가는 바람결에도 매일 무심히 흐르는 강물 속에도 한량없이 피어나는 꽃들 속에도 눈꽃속에도 작가는 세밀하게 또 농밀하고 그들의 삶을 표현해냈다. 그 한 줄의 표현만으로도 그 인물들의 감정이 살아 꿈틀거렸다. [출처] 박경리의 토지|작성자 Lovely 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