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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가]살리기

매거진 휴가: 이제 괜찮아질 시간이야_ 공사현장스케치 6


일곱째 날: 26일_ 월


이상은의 '지도의 없는 마을'이라는 노래를 들으면 한림3리가 생각난다. 


조그만 마을 돌담길 아이들 웃으며 놀고 

담장 아래 작은 평화로운 낮잠을 자고 있는

바람이 이끄는대로 구름이 가는 길대로 나는야 따라 헤맸지만

가장 아름다운 풍경 그대와 가고 싶은 조그만 마을 오솔길

그대에게 물으니 해줬지

아무런 욕심 없이 그렇게 살고 싶어 그렇게 걷고 싶어 그대와

잃었던 거라 생각해도 마음에 행선지만 바꾸면

어디에나 있는 어린 시절 함께 살던

바람이 노래해주고 별들이 그림 그리지

지도에 없는 조그만 마을 비운 만큼 행복하게

구름 없는 하늘 그대와 살고 싶은

그대에게 물으니 해줬지

아무런 욕심 없이 그렇게 살고 싶어 그렇게 웃고 싶어 그대와

그대에게 물으니 해줬지

아무런 욕심 없이 그렇게 살고 싶어 그렇게 웃고 싶어

그대와


지도에는 있지만, 제주에서 제일 작은 마을이다. 작은 마을에 가을이 찾아오려나.. 아침 저녁으로 선선해졌다. 긴팔을 입고 회관으로 갔다. 사진과 원고를 정리하고 늦은 아침을 먹었다. 도시에 있을 때는 9시 아침 먹는 것이 막 늦은 아침은 아니지만, 시골에서 9시에 아침을 먹는 것은 아점을 먹는것과 같다. 게으르다 게을러. 시골에서는 이 나태가 용납이 잘 되지 않는다. 마을은 이미 텅텅 비었다. 날이 좋으니 모두 밭에 일을 나가셨다.

염색을 하려고 준비했다. 예전에 배운 천연염색의 실력이 드디어 쓸모있게 되었다. 치자를 잘라 찬물에 넣어 한시간을 끓이니 노오란 염료가 추출이 되었다. 염료에 깨끗이 빤 흰 티를 넣어 30분을 염색했다. 그리고 다시 백반을 미지근한 물에 풀어서 10분간 물들인 티를 넣어 10분간 매염처리를 했다. 백반은 치자염료와 흰 티가 사이좋게 오랫동안 붙어있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발로 밟고 손으로 주무르고. 노오랗게 나타날 결과물과 끝없는 스킨십을 했다. 애정을 담아서 해서 그런지 물도 어여쁘게 들여졌다. 









주무르고 주무르고 했더니 에너지가 다 소진되었다. 이 날은 언니들이랑 모두 넉다운. 그래도 어찌 멈춰있을 수 있으랴. 우리는 농촌에 있지 않은가?!


오후엔 건축사님이 오셔서 현장으로 출동했다. 강관파이프를 두를 비닐 샘플을 만드는 작업. 햇빛이 비처럼 내렸다. 햇빛장마. 


일은 '놀이'라고 생각하는 영민 조합장님. 잠시 샘플을 들어달라는 명을 받았는데도 이렇게 해맑으시다. 뒤에 삼춘은 갸우뚱~ 뭐햄신고 영민이~.




'아. 마음에 안들어.' 

4시까지 제주시에 가셔야하는 건축사 선생님은 3시 45분이 되도록 샘플을 보시며 마음에 안든다 하셨다. 

다시 작업!


현장을 마무리하고 돌아오니, 우리에겐 수작업이 남아있다! 도착한 폐가살리기 홍보 엽서, 세트별로 비닐에 담는 단순노가다!

그리고 흙푸기! 폐가 텃밭을 예쁘게 꾸미려면 좋은 흙이 많이 필요하다. 이장님께서 허락하신 터에 쌓여있는 제주 화산송이가 섞인 좋은 흙을 푸대에 담기! 

힘들었지만 ... 하루를 땀을 흘리며 마무리하니 좋았다. 나도 카메라를 내려놓고 잠시 거들었다. '삽질할래?'라는 꾸증을 자주 들어서 난 삽질이 참 쉬운 일인 줄 알았는데 보통일이 아니었다. 잠깐 했는데도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삽을 실수로 발목에 떨어트려 피멍까지 났다. 그럼 어때. 덕분에 삽질이 얼마나 어려운 건지 알았는데. 그나저나 왜 되도안한 일을 할 때 삽질한다고 그러는 걸까? 이리도 어려운데. 








어찌됬든. 오늘 하루도 이렇게 끝이 났다. 해가 지니, 농촌, 이 한림3리에도 쉼이 찾아왔다. 조용히, 고요히.